베를린장벽 검문소로 널리 알려진 체크포인트 찰리 인근 `아시시 파노라마`에서 관광객들이 동서 분단 시절 베를린장벽 주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독일관광청]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ㆍ1961~1989)''''

짙은 회색 바닥에 박힌 녹슨 철판. 선명하게 ''''베를린 장벽''''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심장이 뛴다. 이곳이다. 그 옆에 놓인 비석 같은 담벼락. 분단 당시 그래피티(낙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포츠담 광장 한복판. 독일인들은 과거 분단의 아픔을 다 지우지 않았다. 길바닥 붉은 벽돌의 경계를 따라 동과 서가 나뉘었을 게다. 노란색 문구가 시선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임금과 연금의 지역(서쪽)이 시작된다''''. 동서 지역 간 불평등을 비판하는 의미다. 묘한 건 위치다. 장벽이 놓였을 그 경계를 따라, 데칼코마니처럼 뒤집어져 쓰여 있다.

올해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주년이 되는 해다.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지금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흔적들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역시 독일이다. 옛 분단의 어두운 잔재를 오히려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현장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거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앞에서 여성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사진 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어린이 합창단이 공연하는 모습.베를린에서 통일 후 역사가 압축적으로 담겨져 있는 곳은 단연 포츠담 광장이다. 베를린 시민의 안식처인 티어가르텐 공원 남동쪽에 위치한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5㎞ 떨어진 포츠담이라는 도시에서 유래됐다.

5월 포츠담 광장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한 시민을 붙잡고 물었다. 느낌이 어떠냐고. 이 인근에 산다는 아니카 블레스는 "포츠담 광장은 포츠담과 베를린을 잇는 주요 도로가 지나가는 교차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가장 혼잡했다"고 말한다.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베를린 장벽으로 과거 모습은 사라지고 황량하게 방치됐다"는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재개발돼 지금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장소가 됐다"고 활짝 웃었다.

포츠담 광장은 유럽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 밀집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과거 아픔을 다 지우지 않았다. 낙서가 가득한 예전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곧 우리도 DMZ 인근에 이런 상징물을 보며, 감상에 젖을 날이 있겠지.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 괴테의 동상이 라이프치히에 서 있다. 그의 대작 `파우스트`가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구상됐다.

장벽을 한참 동안 바라본 후 포츠담 광장과 붙어 있는 라이프치거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이프치거 광장에 접어들자 어디서 많이 본 문양이 붙은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태극기였다. 주독일 한국문화원이다. 베를린 중심에 우리나라 문화원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반가웠다.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셈이다.

이제 장소를 옮겨 베를린 장벽 검문소로 많이 알려진 체크포인트 찰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맞은편에 위치한 냉전의 아픈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블랙박스 콜드워(Black Box Cold War)''''를 지나치기 쉽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한국전쟁이 소개돼 있다. 냉전의 첫 페이지가 우리 6ㆍ25전쟁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전쟁부터 쿠바를 둘러싼 미국-소련 대립, 베트남전쟁, 동구권 공산정권 붕괴까지 반세기 동안 이어진 냉전 스토리가 한 공간에 정리돼 있다.

베를린장벽 그림 중 가장 유명한 `형제의 키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이 진한 키스를 하는 모습.

블랙박스 콜드워 옆 도로를 건너면 베를린 분단의 아픔을 한 폭의 서사시로 옮겨놓은 공간이 있다. ''''아시시 파노라마''''라고 이름이 붙은 이곳에 입장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베를린 장벽과 얽혀 있는 민초들의 아픈 얘기와 역사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바로 옆 공간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제 장면을 보는 듯한 베를린 장벽 그림이 전면에 서 있다. 장벽 붕괴 전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벽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의 번영 차이가 확연히 구분돼 있고, 장벽에 낙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세히 묘사돼 있다.

베를린에서 차로 2시간여 남쪽으로 달려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곳은 1989년 동독의 장벽을 허물게 한 평화혁명이 일어난 현장이다. 라이프치히의 대표적인 명소인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독일 통일 운동이 시작됐다.

교회 앞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월요일마다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작은 기도회가 열렸다. 그러다가 1989년 10월 9일 7만명이나 되는 대규모 시위대로 발전하게 됐다. 당시 시위대를 겨누던 탱크 바퀴 흔적을 그대로 남겨놨다.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강한 열망, 이 흔적처럼 영원하겠지.

※취재 협조 = 독일관광청(www.germany.travel)

[베를린ㆍ라이프치히(독일) = 김덕식 기자]